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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和

기억나는대로 2014.

 

 

짠이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얼른 보고 싶다 내동생.

(그리고 만난지 10분만에 싸웠다는 슬픈 이야기) 

 

 

0123

 

 

짠은 오랜만에 만난 막내가 좋아죽는다. 이래서야 우리 막내 장가 보내겠나.

 

 

 

 

집에 내려갈 때마다 기다려지는 것 세가지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고모가 볶고 갈아서 내려주는 커피.

 

 

 

꽃분홍 원피스의 진실.

혼자서만 곱게 머리를 따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다.

엄마가 공주처럼 곱게 키우셔서가 아니다.

우리 엄마는 이 날이 체험학습 가는 날이라는 걸 몰랐던거다. 뭐 그런거다.

 

 

 

그래도 사랑해, 엄마 ♡

 

 

 

 

 

짠이 출국했다. 내동생은 시드니로 떠난걸까, 제자리로 돌아간걸까.

 

마음이 헛헛해서 1시간 동안 공항을 배회했다. 나는 내동생을 보낸걸까, 아닌걸까.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는 동생이 눈물나게 그립다.

 


01

 

서촌 갤러리에서 열린 박예슬양 전시회에 다녀왔다.

자박자박 냇가를 걸으며 꺄르르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10년 후 쯤, 내 동생이 지금 28살인데 한 번 만나볼래, 하고 싶은 맑은 목소리였다.

 

 

 

01234

 

 

올해 4월, 5월은 매주 결혼식이 있었다. 하루에 두 건의 결혼식에 가기도 했다.

낙낙거리며 갔다가 종종 내가 울컥하고 오는 결혼식들이었다. 

내가 뜨악해마지 않던 '밥만 먹고 오는 결혼식'도 있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 따뜻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우리 곰식이가 보고싶어졌다.

표본들이 쌓이면서 내린 결론은

'내 결혼식은 무조건 간소하게, 무조건 행복하게'

 

 

0123

 

엄마와 아빠, 큰고모, 작은고모, 막내고모와 거제도 여행을 다녀왔다.

고모들이 시집가기 전처럼, 나는 가장 어린아이였고, 혼자 노래를 불렀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드렸다.

뭇 명절엔 할 일이 너무 많아, 먹어야 할 음식이 너무 많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나눴다.

엄마는 진솔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셨다. "엄마는 네 애 못봐준다"

 

 

012

 

흥남부두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훗날 베네딕트회에 입회해 마리너스 수사가 되었고,

작은 성물방을 쓸고 닦으며 말없이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이름을 빼곡히 적어 넣은 만사천명의 얼굴들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눈에 선했다.

 

 

012

 

광화문 시복식. 전 날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두세시간 자고 일어나니 머리는 아팠다. 

..그래서 이 시복식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시복식 이후 매주 드리는 미사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습관처럼 읊조리던 응답들을 라틴어로 발음해보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기뻐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감사했을까.

미사 후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나에게 하느님을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라고 인사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자원봉사자들에게 곰식이는 단체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 스무명 남짓한 봉사자들 중에는 리오바가 있었다. "언니, 혹시 남편이랑 같이 시복식 왔어요?

푸른셔츠에 키큰 훈남? 방금 자봉들 사진 찍어주지 않았나요?"

나는 남편과 같이 온 건 아니었지만 훈남과 함께 이 미사를 드릴 수 있었음이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프란치스코 신부님께 편지를 썼다. 

우체국에서 발송을 하고나니 부끄러워졌지만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으로 위안했다.

 

 

 

0123

 

Ora et Labora 일하고 기도하라.

수도자들의 삶을 자주 묵상한다.

나는 아마 곰식이를 만나지 않았덨더라면 2008년에 성소모임에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또, 곰식이를 계속 만나지 않았더라면

2012년에 내 카리스마에 맞는 수도원이 어디인지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곰식이를 여전히 만나고 있지 않았더라면

2014년 여름, 어느 수녀원에 입회, 했을, 지도, 모르겠다.

 

 

 

01

 

긴 공사를 끝내고 명동성당 1898+ 홀이 문을 열었다.

 명동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정갈했지만 화려했다.

내가 세례를 받았던 염주동 성당은 소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주교님의 사목방침에 따라

(드디어) 염주동 성당과 염주경환, 염주제준으로 분화됐다.

염주동성당의 소성당만한 크기의 본당과

본당에서 서너 발자국 내딪으면 성당 땅이 아닌 것이 낯설었다.

그 곳 신자들은 더 바짝 다가가 대화할 것이다.

김희중 대주교님께서는 올해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셨다.

 

 

 

 

 

서촌 대오서점에는

 피아노학원 간 막내고모 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보던 그때 그 내음이 있었고,

맛있는 커피가 없었다.

 


 

01234

 

곰식이 먹방

 

 

012

 

곰식이 여친 버전.

 

 

 

01

 

10월 27일. 우리의 기념일.

그는 자수정이 박힌 십자가가 있는 묵주커플링을 선물했다.

손가락에 반지가 있는 연애와 없는 연애.

우리는 또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려나 보다.

마리아홀리기프트의 정성스런 포장에 감동했으나,

청담동 보좌를 지내신 신부님의 말마따나 위화감이 느껴졌다.


 

 

 

 

 

ruth언니가 선물을 보냈다. 뜻밖의 선물은 늘 설렌다.

 

기다리던 마음, 박스를 열어보던 기대함으로 충분히 고마웠는데 선물이 무려 기념주화다.

 

교종의 문장도 세심히 새겨져 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할거라고 생각했을, 내 생각을 하고 있었을 그 시간이 정말 고마웠다.


 

 

01234

 

마신 커피만큼 썼고, 읽은 책만큼 근육을 키웠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구독은 여전히 고민중이다. 

 

 

 

 

 

언니, 나는 언니에 대한 오마주인지, 뒤늦은 그리움때문인지, 언니를 위해 기도해요.

 제가 언니에게 해줄 수 있는것이 이것뿐이라 미안하고, 감사해요.

언니, 나는 언니가 마냥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난 항상 언니와 닮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미안해요.

솔직하지 못한 내가 순수하게 솔직한 언니에게

무엇하나 전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는것을 알았거든요.


언니, 나는 이제서야, 언니를 통해, 나를 나로써 보고 있어요. 고맙고 미안해요.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언니, 편히 쉬어요

 

 

01

 

 

한복드레스를 입고, 자신이 직접 만든 부케를 들고 결혼한 우리 말꼬.

"그때에 난 그대가 참 좋았나보오"



 

 

0123456

 

 

카리타스 원장수녀님께 대림화환을 만드는 법을 배울 때부터였을 것이다.

대림절이 기다려지기 시작할 때가.

진보라에서 순백이 되기까지 초를 밝히는 것도 좋았고,

오아시스를 흠뻑 적셔 측백나무 가지를 꽂는 재미도 있었다. 

내가 준비한만큼 대림절은 기뻤고, 기다린 만큼 반가웁다.

 

 

*

 올해 만난 인연들을 생각해본다.

한 해를 돌아보고자 할 때 역시 생각나는 건 '사람'이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난 한 해동안 '생산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또 누군가의 기준으로 나는 처음 인연 맺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부자가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세상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이제 새해 인사를 하게 된다는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저 '아는 사람'이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었고

안부만 묻던 사람이 '미래를 이야기 나눌 사람'이 되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사이'에서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를 모두 나눠야할 사이'가 되는 것은 마냥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건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고, 우리가 만든 인연에 대한 댓가일지도 모른다.

올해 K 시험을 볼까말까 고민할 때 용기내게 해준 그대, 필기 합격 후 "대박 언니" "대박 누나" 똑같은 문자를 보내온 그들, 그리고 면접 탈락 후 내가 보낸 응원문자에 내 스스로 위로받게 해준 그녀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분노하는 루키라 '누가 더 핫한지' 경쟁해야하는 안쓰러운 그대들.  

올 한 해 자꾸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내 경제활동의 가치는 얼마며, 성과도달률은 얼마인지 스스로 고과평가라도 해야할 것 같은 강박적 연말을 위로하는 분들께 감사하다.

그러나 사실,

연말엔 늘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제와 성탄카드를 보내는게 나만 들리는 인사를 하는 꼴이 아닐까 싶은 사람들.

나는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라 매 년 용기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또 쌓여간다.

올해에는 유난히 잃어버린 사람들 생각이 더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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