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이름이 지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평생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일에 쓰이는 이름이지만
정작 나는 내가 먼저였는지 내 이름이 먼저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직도 집에는 막내동생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 세 개가 쓰인 꼬깃한 종이가 있다.
나는 가끔 불린 적 없지만 불릴 뻔했던,
그러니까 너가 '대현'이도 될 수 있었고, '승호'도 될 수 있었던 순간에 대해
동생에게 이야기 해준다.
태어날 때부터 '나'였던 동생은 시큰둥하고
정작 혼자서 그 대단한 순간에 대해 감탄한다.
아이참, 네가 너이게 된 순간이란 말이야..
나는 사진 속 친구들의 이름이 지어지던 순간들을 모두 어렴풋이 기억한다.
작고 꼬물거리는 아기를 더이상 '아기야 아기야'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령' 발음을 어려워하시던 할머니와 이름을 돌림노래처럼 불러보던 순간.
어떤 이름이 예쁘냐는 물음에 내가 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무게감을 느꼈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을 시작으로 그네들은 드디어 그네들로 자랐다. 요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