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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話

책과 바람난 여자 / 아니 프랑수아



- 침대에 누워 책 읽는 여자
나는 독서광이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지도 않고 책을 잘도 읽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이리쏠리고 저리쏠리느라 보는 사람을 위태롭게 한다. 대신 침대에서는 어떤 자세로든 읽을 수 있다. 중학교때부터 그랬다. 중3 국어시간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는데 주제가 <첫사랑>이었다.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침대에서) 많이 읽었던 때라 두근두근/시계/미사시간/뒷모습/등등과 함께 나는 '침대'를 연상해냈다. 브레인스토밍은 원래 그런거 아닌가? 그런데 친구들과 선생님이 킥킥대고 웃는것이다. 첫사랑과 침대. 웃긴가? ㅋㅋ

- 음악
귀만 기울일 줄 알면 책 속의 모든 것이 음악이 된다. 책을 펼칠 때 실로 꿰맨 책등에서는 탁탁 거품이 튀는 미세한 소리가 나고, 낡은 문고판 책등에서는 책장 넘기기 개시를 알리는 묵직하고 음침한 소리가 난다. 마음이 급한 독자의 손가락 아래에서는 종잇결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표지가 진동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아래와 윗부분이 두장씩 붙어 있는 페이지들을 자를 때 나는 소리다 _P.73



- 바코드
 책을 (소유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크든작든 모든 책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책 내용몰입에 방해를 주는 바코드까지도 거슬리나보다. 아무튼 바코드의 세로 막대기에 삼각지붕을 씌워 새장이나 파르테논 신전으로 변신시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것 같다!


- 신경쇠약

나는 첫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 두번째 단편을 읽어치웠다. 나는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펌프질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위기는 끝나 있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이경험을 교훈삼아, 주변에서 우울증 증세가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나는 메말라버린 정신에 대하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을 주는 단편의 효력을 떠벌린다. 중요한 것은 기분 전환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의 복원이다. _P.141
지난 겨울에 (1차 시험은 코앞이고 기말고사는 일주일 앞이고 제출해야할 레포트는 이틀 뒤였던 어느 겨울에..) 주말 한나절 <구월의 이틀>을 읽어치우고 "해아할 일이 많은데 소설보며 하루를 보냈다는게 너무 죄책감이 들어요" 라고 했더니 그 분은 " 책을 읽는 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마."라고 했다. 구멍가게 주인이든, 정부공무원이든 하루를 책을 보며 마무리 하고 독서등을 끄고 잠을 자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머리맡에 책을 쌓았다. 물론 그 책들을 읽지 않았을 때보다 더 형편없는 레포트를 쓴다거나 기말고사공부를 못하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어쨌든 1차는 붙었고, 반항아의 해방감 비스무레한것도 느꼈다. 

그리고 이 프랑스 여인의 뉘앙스에서 단편소설을 소설 취급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한겨레 [양질의 도서정보가 흘러야 독자가 생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1890.html

우선 도서관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놓은 서고가 아니라 ‘책에 대한 정보’를 집적하고 유통시키는 공간이다. 내 또래들이 학창 시절 양질의 도서 정보를 일상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도서관으로 기능했던 이른바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책에 대한, 책을 둘러싼 담론’이야말로 도서 정보가 끊임없이 갱신되고 확장되는 데 불가결한 젖줄이다. 영상 산업의 경우, 영화 잡지가 상당히 고급한 영화 담론을 대중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정보가 풍성해지지 않았던가

- 독서광 일반병리학

독서는 잠을 못자게 만든다. 독서광은 읽고 있던 책을 덮기보다는 '잠의열차 ( 두시간마다 지나가는)를 고의적으로 놓치고 만다. ....그는 언제나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책을 읽느라 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_P. 156

- 악과 덕

열여섯 살인 토마가 만화조차 거의 읽지 않는다고 미쉘이 투덜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이러한 제 아버지의 걱정을 일러주었다. 투마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책을 읽지만 아빠에겐 말 안해요. 말하면 분명 이것저것 캐물을 테니까요" _P.222

엄마가 열네살 막내동생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길래 아이를 지켜보았다. 중학교 선생님인 친구들이 말하는 "이해안되는 녀석들" 딱 그만큼이었다. (예를 들어, 숨이 헐떡거릴때까지 축구를 하거나 단답형 대답들) 그리고 아이는 굉장히 책을 많이 읽었다. 게다가 빨리. 
 엄마한테 너무 걱정마시라고 해놓고 나는 아이 옆에 딱 들러붙어 묻는다. 재밌어? 대충읽는건 아니지? 무슨 내용이야?  내가 문제다.

- 이삭들로 이루어진 에필로그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살 때 당했던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지우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주제가 주어졌던 작문 시간에 모서리가 닳아 둥글게 변한 겉표지, 압지처럼 부드러운 종이 등을 심혈을 기울여 묘사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여백에 흘려 붉은 글씨로 이렇게 써놓으셨다. '주제에서 벗어남'_P273
내가 이 예민하고 사회부적응아였을것 같은 프랑스 아줌마의 책이 좋아져버린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