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話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 공지영



포레스트 검프가 '초콜렛 상자에서 인생 고르듯' 무슨 책을 먼저 읽을까.. 고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골라든 책이 싱겁다. 일주일 간 서울에 계셨던 엄마가 읽다 두신 <수도원 기행>을 다시 집어들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가 2002년이니, 8년만에 다시 떠난 <수도원 기행>은 대학교 1학년때의 그 곳이 아니었다.

아르정탱, 떼제공동체, 그리고 항복과 행복. 입술을 오물거려 발음해보는 그것들이 예전과 달랐다. 정말. 

 

우리는 가둠으로써 제일 큰 것을 얻은 거예요. 세상의 작은 것들을 버리고 제일 큰 것을 얻었으니 더 바랄게 없지요.
........바로 원장수녀님께 면회를 신청했어요. 그러고는 말씀 드렸죠. 제발 여기서 죽게 해주세요.. 그때 원장수녀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 죽는 건 안돼요.(P.50)

 유럽여행을 하다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를 느꼈다는 수녀님들이 계셨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 같지만 나도 그 비슷한 것을 느낀적이 있다.

2008년 여름, 명동에서 친구를 만나고 예상보다 일찍 헤어지고 명동성당에 들렀다. 평일 미사 시간이 두시간 정도 남았길래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미사를 보고 가자고 생각했다. 성물방에서 책을 한 권 사고 성모마리아 상 앞에 서서 그냥 눈을 감았을 뿐인데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계성여고에 몰래 들어가 정말 정말정말 큰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 매미소리가 들리고,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고, 수녀님들이 왔다갔다 하셨다. 아, 행복해. 아, 정말 행복해, 정말 행복해 죽겠어. 하고 마음 속으로 소리도 질렀다.  신부님 코 앞에 앉아 미사를 드렸다. 내 뒷줄에는 세 분의 수녀님이 앉으신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 하고 인사할뻔 할만큼 그때 나는 왠지 붕붕 떠 있었다. 

 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내 뒷줄에 앉으셨던 수녀님 한분이 성당을 나가려는 내게 말을 거신다. " 아가씨, 밖에서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세 분의 수녀님은 명동 성당 뒤에 있는 샬르트 성 바오로 수녀회에 계시는 수녀님들이시란다. 미사보고 나오면서 세분의 수녀님이 나를 수녀원에 초대하고 싶으셔서 다시 되돌아와 말을 걸었노라고.

"시간 있어요? 괜찮으면 요기 바로 뒤에 있는 우리집 잠깐 구경할래요"

"네 좋아요 좋아요! 저 시간 많~아요^___^"

무엇인지 모르겠는 마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초대, 무어라 말 할 수 없이 두근두근한 발걸음으로 수녀님들을 따라갔다.  우리 엄마나이 또래로 보이시는 스텔라 수녀님은 조용한 카리스마가 넘치셨고, 그 옆에서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계시는 두 수녀님은 곧 종신서원으르 앞두고 계신다고 한다. 명동성당을 몇 번 와봤으면서도 이 뒤에 수녀원이 있는 것은 몰랐다. 철문이 참 크다. 높다랗다. 일본대사관만큼 크다. 경비실 아저씨께 인사하시고 철문을 여신다. 행복해죽겠다는 수녀님들 중 한분이라도 "준비하시고! 짜자잔~" 하고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셨으면 덜 놀랐을까.

비밀의 화원 문이 열리자 그 곳에 진짜 천국이 있었다. 서울이고, 그 시내 한복판인데 어쩌면 이런데가 있어..생각할만큼. 넓은 정원이 있고, 나무가 푸르르고, 꽃이 피고, 게다가 100년된 도서관이 있었다.

 

그 때 나도 "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이다.방정맞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만큼 행복했다.  

그리스어로 '시(詩)'와 피조물이라는 뜻의 '사람'의 어원은 같다. 둘 다 'poiesis'인 것이다. 내 작품 중 하나를, 설사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못 만든것이고 내 생각에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누군가 모욕했을때의 분노를 나는 안다. 그것은 그 글을 쓴 나에 대한 모독이니까. 그러니 신의 '시'인 사람을 사람이 모욕했을 때 우리가 신을 모독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닐까. (168p.)

  헤세가 말했다. " 경건하다는 것이 건강과 명랑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믿는 마음이란 단순하고 소박하며 건강하고 조화로운 인간이나 아이들, 원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소박하지도 못한 우리같은 인간들은 숱한 우회로를 통해서만 신심을 찾아낸다...자신에 대한 믿음이 바로 신심의 출발이며 우리들이 믿어야 할 신은 우리들 마음 가운데 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을 긍정할 수 없다.(193p) 난 쉽게 용서하는 사람들 믿지 않아요. 무작정 너그러운 사람도 믿지 않구요. 예수님도 십자가의 형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했잖아요. 십자가의 고통도 거치지 않고 잘도 용서하는거, 그거 교만이거나 위선이거나 둘 중의 하나 아니에요? 아닌 건 아니라고 먼저 인정하고 그 다음에야 용서를 하든지 이해를 하든지....(216p)
 "지영 씨 큰 일 많이 시키시려고 하느님이 부르셨나봐" 한 선배는 말했다. 나느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맨 처음 신앙인으로 돌아왔을때 날 위해 기도해 주던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나 자신 역시 내가 글을 쓰고 어느 정도 이름을 얻은 사람이니 하느님이 날 쓰시려나 보다, 약간은 설레고 약간은 두렵고 한 중에 그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깨닫게 되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나보다 많다, 유명하기로 따지면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느님 앞에서 내 잔재주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신께서 불러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나를 쓰시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성당에 앉아 있다가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그건 그저 그냥, 사랑이었다는 걸.(222p)

... 그러니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을 만나려고 내가 이 길을 떠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50p)

나와 화해했을때의 기쁨을 다시 느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신을 긍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를 용서했을 때도 생각났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것이다/ 나도 나에게 더 빨리 흐르라고 다그치지 말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느냐.  5일간의 시험이 끝나고, 예전의 나였으면 있는걱정 없는걱정 있을걱정 없을걱정 다 하며 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 맡기고 다 감사하고 천천히 흐를 수 있게 되었다. 신림동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곰식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 7년동안 이 좋은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늦게 배워 미안>

회개라는 성서상의 용어는 원래 히브리어로 '거슬러 올라가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단다. 그러니 나는 <수도원 기행>을 다시 읽으며 회개를 하고 있었던가보다 다시 그 해 여름을 생각하고, 그 이후 어떻게 어리석게 살았나, 그 해 여름 고마운 초대를 잊고 어떤 꼬락서니로 살았나를 생각했으니.

예수님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하셨다. 나의 수도원에 찾아오는 이가 있을때는 있는대로, 없을때는 없는대로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싶다.

 *공지영이 기행한 수도원들을 크게 둘로 나눠보니, 프랑스혁명때 수도자들이 쫓겨난 수도원과 쫓겨나지 않은 수도원으로 나누게 되었다.

물질의 기득권자들이야 원래 황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정신적 지도자들이 피폐하고 보수화 될 때에는 용서할 수 없으리라.   

* 내가 읽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2001년에 초판된것이다. 읽으면서 엄머, 이 책 다시 출판됬다던데 이런 내용이? 했는데

작년에 나온 건 '개정' 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