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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話

농담하는 카메라 / 성석제


희망소매가격은 '희망+소매+가격'을 합친 말이다. 희망을 소매한다니? 언제부터 희망이 도매금, 소매가격으로 팔 정도로 흔해졌는가? 그때부터 아버지에게는 (라면)용기에 적힌 모든 문자가 희망을 기준으로, 희망을 중심으로 하여 읽히기 시작했다.

 일단 희망의 중량은 86그램이다.  희망의 원재료명은 소맥분, 팜유, 감자전분, 초산전분, 호화옥수수분, 녹차풍미액 등 오십여 가지나 된다.  희망은 직사광선을 피하고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한다. 희망의 유통기한은 전면 또는 밑면 표기일까지이니 희망도 오래두면 상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용기에 적혀 있는 대로 희망을 조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뚜껑을 개봉 표시선까지 열고 스프를 넣은 후 끊는 물(370ml)을 용기 안쪽표시선까지 부은 다음 뚜껑을 닫고 3분간 기다린 후 잘 젓는다. 조리가 끝나면 먹으면 된다. 그렇다. 희망은 먹는 것이다.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