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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話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1. 거인 인력과 시대를 벗어나는 방식

 

 

서울신문 2010. 3.22

아이들은 하늘 높이 공을 던진다. 그러다 왜 공이 떨어지는지, 왜 위로 오르지 않는지 묻는다. 엄마는 거인이 땅 속에 살아서 '거인인력'으로 공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 거인은 공만이 아니라 세상만물을 자기 쪽으로 글어당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

 

나쓰메 소세키가 잡지 '호토토기스'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기 시작한 1905년 무렵, 일본은 러일전쟁 승전으로 한껏 고무돼 있었다. 이후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다. 대한제국은 열강의 묵인 속에 을사늑약을 강요당했고, 1910년에는 강제로 일본에 병탄된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확보하면서 일본은 강력한 제국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여받은 근대적 개인들은 국민이라는 사명을 띠고 역사적인 개인이 되어야만 했다. 모든 것은 국가를 중심으로 끌어당겼고, 일본은 제국으로 향해 나달렸다.

 풍부한 학식을 쌓은 지식인, 수완 좋은 사업가, 진리를 부르짖는 철학자, 지체 높은 귀족, 야망 가득한 청년 등 이른바 그 시대의 선두 주자들이 낯선 풍경으로 새롭게 재구성된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서 구샤미 일당은 딴청만 피우고, 우리의 주인공 고양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닐 뿐이다. 고양이는 마지막 죽음까지도 태평스럽게 맞이한다. 이름 없는 고양이와 무능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이 유유자적한 자유가 거인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세키의 방식이다. 이 때문에 고양이는 구샤미 일당을 '고급스러운' 무능력을 가진 인간들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로써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하지만, 거인 인력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비켜 나가는 틈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나쓰메 소세키는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 쓴 소설작품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시대를 벗어나는 방식을 시도했던 것이다.

 

 

2. 나는 고양이다. 인간이란 것들은..

 

 

주인이나 메이테이 선생이나 간게쓰 군이나 세상을 등진 백수건달, 그들은 바람 부는 대로 수세미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초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세속적인 명예욕도 있고 욕심도 있다. 그들의 평소 대화에 남을 이기려는 마음과 경쟁심도 언뜻언뜻 엿보이는 터라, 여차하면 그들이 늘 욕을 해대는 속물과 한통속이 될 우려도 있으니 고양이인 내가 보기에도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만 그들의 말과 행동거지가 어설픈 지식만 가지고 모든 걸 다 아는 척하는 사람들처럼 뻔뻔스럽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P. 73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하면 나도 바쁘다 너도 바쁘다 떠들어 댈 뿐 아니라 그 안색까지 정말 바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칫 분주함에 쫓겨 숨이 꼴까닥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스러워 보인다. 그들 가운데에서는 나를 보면서 팔자가 저 정도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하는이도 있는데, 아등바당하라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니까 좋아 보이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감당도 하지 못할 만큼 멋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는 괴롭다 힘들다 투덜거리는 것은 제 손으로 아궁이에 불을 활활 때면서 덥다고 야단하는 격이다. 나도 머리 모양을 스무 가지나 생각하는 날이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P. 189

 

그렇게 입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뭐라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서양 사람들이 입으니까  입는다고 할 뿐이다. 서양 사람들이 강하니까 억지라고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흉내를 내지 않고서는 못 견대는 것이다. 긴 것에는 감겨라, 강한 것에는 굽혀라, 무거운 것에는 눌려라. 그렇게 명령어에 짓눌려 살다니 비굴하지 않은가. 비굴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야 나도 너그러이 이해해 줄 테니, 일본 사람이 위대하다는 생각은 그리 하지 말 일이다. P. 241

 

그런 순간에도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 고집은 이미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우리요, 고칠 수 없는 질병이다. 질병은 쉬이 고쳐지지 않ㅎ는다. 하나, 어리석으나마 내 생각에 그 고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 교장에게 부탁하여 퇴직을 시키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융통성이라고는 하나 없는 우리 주인은 보나마나 식솔을 거느리고 길거리로 나앉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해 주인에게 퇴직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주인은 병은 기꺼이 앓으면서도 죽기는 싫어한다. 그러니 죽지 않을 정도로 병을 앓는 일종의 사치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주인에게 그렇게 병이나 앓고 있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럼 겁 많은 우리 주인은 부들부들 떨 게 틀림없고 떨다 보면 병이 뚝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안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P.252

 

직업에 따라서는 거꾸로 치솟은 상태가 아주 중요하고 치솟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시인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시인에게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은 기선에 석탄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공급이 하루라도 중단되면 그들은 뒷짐을 지고 밥이나 축내는 아무 쓸모없는 보통 사람이 되고 만다. 하기야 이 '치솟음'은 미치광이의 다른 이름이나, 미치광이가 되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으므로, 그들끼리는 치솟는 것을 치솟는다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인스피레이션, 인스피레이션 하고 외치니,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 인스피레이션은 그들이 세상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일 뿐 그 실상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일이다. (...) 평생 미치광이는 오히려 만들기 쉬운데, 만년필을 쥐고 원고지를 마주하고 있을 때만 미치광이가 되어야 하니, 제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신이라도 난해한 작업인 듯 좀처럼 만들어 보여 주지 않는다. 신이 만들어 주지 않으면 제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학자들이 피를 내려 보내는 방법 못지않게 피를 거꾸로 치솟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였다. P. 270

 

주인은 무슨 일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대단하다 여기는 버릇이 있다. 물론 이는 우리 주인에 한하는 버릇은 아닐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는 허투루 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여기고,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왠지 대단하다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지만 학자들은 아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이다. 이 점은 대학 강의에서 무슨 소린지 모를 얘기를 하는 선생은 평판이 좋고, 아는 얘기를 또 설명하는 선생은 인기가 없는 것만 봐도 족히 알 수 있다. P. 313

 

"이렇게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 수도 있겠으나, 부인들은 무슨 일을 할 때 곧바로 빠른 길로 가지 않고 애써 멀고 복잡한 길로 돌아가는 폐단이 있습니다. 물론 부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오늘날에는 남자 역시 문명의 폐해 때문에 다소 여성적이 된 탓에 괜한 수고와 품을 들이면서 이것이 옳은 방법이며 신사가 취해야 하라 방침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하지만 이는 개화라는 망상에 기형적인 사고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인들꼐서는 지금 말씀드린 옛이야기를 잘 기억하셨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보 다케처럼 솔직하게 생각을 말해 일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바보 다케가 될 수 있드면 부부간이나 고부간에 벌어지는 불미한 갈등의 3분의 1은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속셈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속셈이 화근이 되어 불행을 낳는 법입니다. 많은 부인들이 남자보다 대체로 불행한 것은 이렇게 속셈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아무쪼록 바보 다케가 되십시오" P.359

 

우선 주인은 이 사건에 대해 오히려 냉담했다. (...) 상관이 없으니 동정의 여지도 희박한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눈살을 찌푸리고 눈물 콧물을 흘리고 탄식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정이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동물이라니, 수긍하기 어렵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치르는 세금이라 치고, 교제를 위해 때로 눈물을 흘리고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다.

 말하자면 교제용 표정인데, 이것이 또 몹시 복잡하고 힘든 예술이다. 세상은 이 교제용 표정을 잘 짓는 사람을 예술적이고 양심이 있다 일컬으며 크게 대우한다. 그러니 남들에게 대우받는 인간일수록 수상한 것이다. P.373 

 

 

 

3. 번역

 

 

-  그러니 물고기가 죽으면 '떠올랐다'고 하고 새가 죽으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요, 인간이 죽으면 '떴다'고 하는 것이다. (김난주 역)

 

- 그러므로 물고기의 왕생(往生)을 '뜬다'하며, 새의 서거(逝去)를 '떨어진다'하며, 인간의 적멸(寂滅)은 '죽는다'고 일컫는다. (유유정 역) 

 

- 물고기가 죽으면 '떠오른다' (송태욱 역)

 

역자의 노고가 느껴진다. 김난주 씨가 번역하고 열린책들에서 나온 판을 읽었다.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유유정역과 현암사에서 나온 송태욱역 본을 읽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나에겐 김난주 역이 더 좋았다.

 

 

4. 나쓰메 소세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110530021002&keyword=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때때로 인물들의 얼굴에는 곰보자국이 있고, 또 많은 경우에 주인공들은 연애 후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모두 퇴화의 증거다. 소세키는 이들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질문하기를 유도하면서 결국 거짓된 욕망과 비겁한 자아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소세키에게 자기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사회가 칭찬할 만한 대단한 개성이나 새시대에 맞는 모범적 인간성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인생을 살라! 그 무엇보다 자기답게 살라! 소세키는 우리 각자가 지금 갖고 있는 부와 명예, 우정과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들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 자기본위를 위한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을 직시하는 일에 희망을 걸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제국주의와 같은 타인본위의 삶을 거부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청년과 지사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꿈꾸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선생님,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 시를 지은 당사자도 무슨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스피레이션 하나로 쓰는 탓에 시인은 다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이 없지요. 얼마 전에도 제 친구 중에 소세키라는 자가 <하룻밤>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애매모호하고 두서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무슨 소리를 하고자 한 것인지 주제를 물어본즉, 자기도 그런 것은 모른다면서 상대도 해주지 않더군요. 그런 점이 바로 시인의 특색인가 봅니다. "P. 219  

 

 

 

5. 시끄러운 수다가 끝난 뒤  

 

 

"웃음이 지나고 난 뒤의 허망함.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왜 그리 웃었나 싶은 의구심.

의구심 뒤에 숨어있는 남모르는 탄식과 절망."

 

허세 가득한 구샤미 선생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에서 메이지유신의 성공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드높아진 일본인들의 우월감이 보인다. 소세키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것들이 얼마나 쓸데없고  우스꽝스러운지 이야기 한다. 어느 선생네 고양이도 '나는 애국심이 있다'고 말하게 만든 '거인인력'의 존재나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일본의 '소극주의'를 역설하는 장면도 일본 근대 지식인의 대표격인 소세키의 목소리다. 소세키가  자조적으로 풍자하는 소설을 1900년대 아시아의 유일한 발전국가로서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냈던  일본인들이 이해하고 사랑했다는 아이러니가 아이러니 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1900년대 동북아시아 '미개국 조선'의 후예. (이렇게 쓰면 편협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