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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話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책은 도끼다
박웅현


.. 사랑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워홀의 애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느냐면, 우리는 워홀이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통조림은 워홀을 사랑하고 평생의 연인으로 삼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자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봐준 사람이 처음이니까요. 아무도 자기를 중요하게 혹은 예쁘게 봐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놓아 줬어요.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에요. 우라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그걸 연결해서 알랭 드 보통은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사랑의 유사점에 대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오랳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코나 손의 점들을 애인이 칭찬해주는 일은 비슷하지 않을까? 애인이 '당신처럼 사랑스런 손목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거 알아?' 라고 속삭이는 것과 예술가가 수프 통조림이나 세제 상자의 미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것은 구조적으로 같은 과정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P.115


1.
옷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 하나 익어간다.

2.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3.
답답할 때가 있다
이 세상밖에 없는가
기껏해야
저 세상밖에 없는가

4.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고은의 낭만에 취하다」P.150


즉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에 들어가기 앞서 소설을 설명한 글에서 뫼르소에 대해 한 말입니다. 거짓말을 거부한다는 건 이런 얘기죠. 거짓말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느낀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늘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런에 뫼르소는 그걸 거부하는 사람, 그래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의 문장들은 독립적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살아 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에 대해 사르트르가 분석을 합니다. 그가 제시한 <이방인>에 대한 논점의 핵심은 이방인은 현재를 산다는 점이죠.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그리고 현재를 파편적으로 살아요. 마리와 섹스를 하고 엄마 장례식에 가야 하니까 가고 해수욕을 하고 싶어 바다에 들어가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카뮈가 한 것이 문장을 다 독립시켜놓은 겁니다. 보통 우리가 쓰는 글들은 앞의 구절을 받아서 이어가는데 <이방인>의 문장들은 그런게 없어요. 과거로부터 현재를 빌려오지 않고 미래를 담보하지 않아요. 실존적인 삶의 태도와 맞물리죠. 그런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을 똑같이 차용한 것이 이 책의 대단한 점이라고 사르트르가 극찬을 합니다.
각개의 문장은 그 전의 문장들로부터 이미 얻은 힘을 이용하기를 거부하며 저마다의 문장은 항상 새로운 시작이다.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P. 207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갔다 : 테레사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와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파티장에 도착해 함께 춤을 추는 두 사람, 그 춤은 토마스가 죽기 전 마지막 춤이 되는데, 둘은 행복해합니다. 모든 걸 포기했지만 그 순간 아주 행복해요. 그런데 이상한 행복감이에요. 내 품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작아지길 원했던 남자가 진짜 그렇게 돼서 함께 춤추고 있는데, 작아진 그 남자의 모습이 슬퍼요. 슬픔이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행복이란 그들이 함께 있다는 걸 의미하죠. 그래서 시골에서 늙어가고 있는 슬픈 인생의 형식 속에 둘이 함께 춤추고 있다는 행복이 공간을 채운 거죠. 슬픔이 형식이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는 테리사와 토마스의 사랑에 대한 이 마지막 구절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P.271


*
나의 키치적 삶을 반성 중. 왜냐면, 키치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를 수집하고 다니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