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아

"쫄지마!" 그리고 "두려워 말라" - <'닥치고 정치'를 읽으며 /최승정>


*
최승정 신부님이 페이스북에 올려놓으신 글.
빈틈없이 말씀하시는 분의 ㅋㅋㅋㅋ 는 겸손.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두려워말라"
그 해결책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오늘, "쫄지마!"의 해결도 "함께" 라는것.



*
< 닥치고 정치>를 읽으며_


결국 김어준이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쫄지마"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허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그의 "쫄지마"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신학적 해석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ㅋㅋㅋㅋ

사실상
구약의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신약의 그리스도가 새이스라엘인 교회(ecclesia)에게
던지는 명령은 성경전체를 통해 동일하다.

"두려워말라"

---------------------------

Heidegger 역시 두려움(Angst)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면서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을 출발시킨다.

김어준이 Heidegger나 성경을 바탕으로
철학적-신학적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동물적(?) 감각을 통한
실체에 대한 직관은 사뭇 놀랍다.

왜냐하면 (불의한) 지배의 기술 중
가장 성공적인 형태는
인간의 역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허상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구약의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신약의 율법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 등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또는 지배와 피지배의 메카니즘을 통해 생성된)
허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하느님과 예수의 외침이었으니....

---------------------------------

"두려움"을 극복하는 신학적 방법은
"함께있음"이다.

창세기의 성조사에서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에서부터
하느님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약속을 반복하신다.

신약의 예수사건 역시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는
이사야의 메시아 선포를 통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예수사건을 우리에게 전하는 마태오 복음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장엄한 선포와 함께 마무리된다.

그 "함께있음"을 통해
"두려움"은 극복되고
허상의 초라한 실체는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

아마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김어준이 자신의 책을 통해
(또 "나꼼수"를 통해)
세상에 "쫄지마"를 외치고 있으리라.


나 혼자만으로는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없으니
우리가 함께(!) "쫄지마"를 외치자는 일종의 초대를
나는 그의 책에서 읽는다.



우리가 함께 있다면
(더욱이 우리가 하느님/예수와 함께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아니,
우리가 세상의 허상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자격조차 없다.


그러니....
쫄지말자!

'담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0) 2012.07.03
2012년 졸업생 귀하  (0) 2012.05.14
낮달  (3) 2011.11.17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0) 2011.11.06
Try to remember  (2)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