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 한겨레 출판 /2010.1.18
기차가 지나갈 때 그녀가 올려다보는 바람에 나는 지척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둥글고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슬럼가의 젊은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유산과 고역 때문에 스물다섯인데도 마흔은 돼 보이도록 지쳐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순간 동안, 내가 익히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그들이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_P. 28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 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없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듯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 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라믇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명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_P.50
작가가 자신에 대한 서평을 인용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은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서 알지만 나는 여기서 때마침 내 책 한권에 대한 '맨체스터 가디언'의 서평을 반박하고 싶다.
"위건 아니면 화이트채플에 잠시 내린 오웰 씨는 긍정적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시선을 차단해보리고는 인간성을 비방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한다"
아니다. 오웰시는 위건에 한동안 '눌러앉아' 있었으며 위건에는 그에게 인간성을 비방하고픈 소망을 불러일으킬 만한게 전혀 없었다. 그는위건을 아주 좋아했던 것이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은 이웃이 집을 비운 사이 이웃의 닭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 그 뒤 그는 "닭 모이 주는 일을 한다"고 당국에 보고되는 바람에 반박을 하느라 몹시 애를 먹었다. 위건에서 흔히 하는 우스개 중엔 어떤 남자가 '수레로 장작 나르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실업수당을 거부당했다는 사연이 있다. 그가 밤에 장작을 나르는 모습을 봤다고 누군가가 고자질을 한 것이었다. 그는 장작을 나른게 아니라 야반도주를 한 것이라고 해명해야 했고, 장작이란 그의 가구였다.
' 자산조사'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그중에도 때로는 병석에 누워 있던 논인들이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이를테면 홀아비인 노년의 연금생활자는 대개 자녀들 중 하나의 집에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가 매주 받는 10실링은 가계의 생계비로 쓰이고 그는 그럭저럭 보살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자산조사'라는 제도는그를 하숙인으로 보며 그가 자녀의 집에서 함꼐 살면 자녀의 실업수당을 삭감해버린다. 때문에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진짜 하숙집으로 나가 살면서 하숙집 주인에게 연금을 다 넘겨주고 굶주림에 허덕인다. _P.107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보다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무기력감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떨쳐버리기 어렵다. 나는 필력이 정말 뛰어난 실업자를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따금 잡지에서 작품으로 접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아주드문드문하긴 해도 그런 사람들은 종종 뛰어난 글 한 편이나 단편소설을 써내곤 하며 그런 글을 추천사만 요란한 대부분의 작품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기 재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 걸까? 누구보다 시간이 많은 그들이 왜 차분히 앉아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_P.111
여생을 실업수당에 의존하기로 작정한 듯한 사람들이 잔뜩 생겨났다. 그런데 내가 ㄱ보기에 감탄스럽고 심지어 희망적이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정신적인 파탄을 겪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그렇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노동 계급은 중산층처럼 빈곤의 부담 때문에 망가지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 계급은 실업수당을 ㄹ받는 처지이면서도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남부의 브라이턴에 사는 노부인들에겐 당치도 않은 일일 거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노동계급의 분별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증거다. 즉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긴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_.P.118
물론 전후에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명을 막은게 사실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실업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게 전부 지배층의 교활한 술책이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본 바로는 우리 지배층에게 그만한 머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말하자면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제조업자들과 값싼 고통완화제가 필요한 배고픈 사람들의 형편이 그럭저럭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_P.122
밑줄 그은 문장들이 1936년 위건의 이야기인지, 2013년 서울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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