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化

서른, 의지를 파악할 시간.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경향 등 일간지 정치부 기자 5명이 쓴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공동 집필한 한 기자는 "기자가 본 훌륭한 정치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정도의 질문쯤 됐을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정치인은 크게 희생한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 같다.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가 크게 잃는 것을 많이 보았다"

 

*

매우 짧은 기자 생활 중에

질적으로 양적으로, 가장 많은 자원을 쏟아부은 취재는

현재 광주시 광산구 삼거동의 한 부지에 추진중인 콘크리트 공장 건축 반대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도 산이고, 저기도 논이고,

행정구역 상 같은 광주시인데도 할증요금을 허허 웃으며 요구하는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있는 곳.

 

택시 잡기가 힘들어

한번 올라탔으면 남으로 남으로, 이대로 해남까지는 가달라고 해야할 것 같은,

도로에서 기껏 보이는 것이라곤 "@@ 장애인복지시설" "## 요양원"같은 푯말이 있는 곳.

 

작년 2월쯤, 이 마을에 있는 약 5천평 되는 허허벌판에 주인이 바뀌면서

콘크리트 공장이 들어서기 위한 창업승인이 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과 주변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여름부터 광산구청 앞에서 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를  자주 열었다.

 

공장부지와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여성장애인 스무명 가량이 모여사는 수녀원이 있고,

800미터 안에는 장애인시설,요양원, 병원 등 복지시설 15개가 밀집해 있어

마을주민들보다 이 시설 관계자들의 저항이 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며 반대했다.

 

처음 이 곳을 취재했을때는 막 창업승인만 받은 단계였고,

그래서 수녀원 '바로 앞'에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쓴 기사가

좀 오바스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첫 날 취재엔 MBC, KBS 취재기자들도 같이 있었으니

나도 제대로 취재해보고 싶은 욕심만 그득했던 때랄까.

 

그러나 현행 제도는 이 공장이

그들의 생존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이후 티비에선 후속보도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방송시간만 따지면 모두 30분을 넘게 이 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결론적으론 지금 이 곳엔 덤프트럭이 왔다갔다 하며 공사 중이다.

 

경제과에서도, 도시개발과에서도, 건축허가과에서도 공장을

승인하거나 허가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람살기 좋은 광산구, 복지 천국 광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렇단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다 공장주가 소송이라도 걸게 되면 

100% 구청이 지는게 뻔하기 때문에 법과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안을

재량껏 불허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누가 소송 불사하고 건축허가를 반려하겠어요." 라고 100% 확신에 차서 말하는 공무원들.

 

 

*

중소상인을 위해 대형마트 건축허가를 반려한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통합진보당)이

지난 달 징역1년을 구형받았다. 윤종오 구청장은 “지역경제의 육성책임과 의무가 있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기사를 인용하자면,
윤구청장은 이날 재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코스트코의 추가 입점은 지역경제 전반에 심각한 갈등과 마찰 등 다양한 문제 발생의 소지를 안고 있다. 사회전반에서 이러한 대형마트로 인해 불거지는 지역경제의 불균형,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의 몰락 등의 현실을 보고, 들으며 공익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였고, 중소상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코스트코 건축허가 신청을 보류하는 반려처분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윤 구청장은 이어 “행심위의 재결에 따를 수 없었던 사유는 현행, 행정심판법과 다른 법령에서 행심위의 수용하기 힘든 재결에 대해 이의나 구제를 구할 수 있는 법적제도나 규정이 현행법엔 없기 때문에, 지역경제의 육성책임과 의무가 있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할 수밖에 없었다”며 “거부처분이 재량행위이며, 지역경제의 균형발전과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라는 공익적인 목적 달성과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거부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려 하였다”고 설명했다.

윤 구청장은 끝으로 “코스트코는 금년 8월 16일자로 사용승인처리가 되어 현재 정상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권리행사의 방해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행정을 추진함에 있어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잣대로, 오로지 전체주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판결은 내년 1월17일 열리는 네 번째 공판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직권남용으로 적용할 수 있는 형은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의 벌금,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선고유예 등이 있다. 만약 윤 구청장이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최종확정되면 구청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

자치구 신년사엔 '살기 좋은 마을'를 표방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있다.

가끔 '가능하면' 살기 좋은 마을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게 아니라면, '법을 바꿀 수 있다면' 살기 좋은 마을이라던가.

 

*

서른, 의지를 파악할 시간이다.

내 스스로 "넌 왜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아? 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있어?" 라고 물으면

어느새 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는지 알아? 정말 큰 것을 잃어버릴 수 있어. 그건 어리석은 일이야"

 

짐짓 현실적인 어른인체 하고 있지만

실상은 핑계를 방패삼아 도피처가 없으면 불안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인생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의 피해를 나뿐이 지는게 아니라는

슬프고도 내심 안심이 되는 사실을 모르는것은 아니다.

 

진짜 하고 싶으면 해야지. 아니면 하고싶지 않다고 말하던가.

어느 쪽이 덜 후회스러울지 파악해야할 시간, 서른번째 생일이 벌써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