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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話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홍인희


저자 : 홍인희 지음
출판사 : 교보문고 . 2011.05.30
책 소개 : 정철도 몰랐던 21세기 관동별곡. 먹을거리뿐 아니라 사는 집, 마을, 뒷산, 앞개천 등 우리 산하에서 탄생하고 자리 잡은 모든 것에는 전설과 역사가 있다. 명소마다 깃든 기기묘묘한 사연, 순박한 심성의 민중들이 일구어간 투박한 이야기,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맞섰던 왕과 혁명세력 등 이 책은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문화적 영역에서 강원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지난 일을 살피되 변화를 알고,
창조를 해나가면서도 근본에 능해야한다._P.7


나무의 동쪽 잎이 먼저 피면 영동 지방에 풍년이 들고, 서쪽 잎이 먼저 피면 영서 지방에 풍년이 든다는 강원도의 전설과 설화, 역사문화적 이야기들이 풍부하다. 사료고증에만 머물거나 풍류가의 감탄만에만 그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강원도는 삼국시대에 여러 왕조가 흥했다 망한 곳이기도 하지만,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의 망향의 땅이기도, 설악의 드높은 기상으로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토박이들의 삶과 도망온 자들, 도망치는 자들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그 땅을 사랑하게 만든다.

정선에서 떼 한 바닥 타고 가서 (강물을) 넘겨주면 정선, 영월군수의 한 달치 봉급보다 많은 돈을 받았다. 보통 떼꾼들이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그 돈으로 큰 황소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서 '떼 돈 번다'는 말이 생겨났다. _P. 57

'경포 五月' - 하늘에 달이 뜨니 天月이요, 호수에 달 비치니 湖月이고, 술잔에 담긴 달이라 樽月(준월)이며, 님의 눈동자에 어린 저 달은 眼月인데 , 그대로 내 가슴에도 달 하나 품으니 心月이라._P.74




옛날 선비들이 그리던 문인화에서도 쏘가리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주로 과거에 급제해 궁궐에 들어가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흔히 볼수 있는 낚시 바늘에 꿰여 있는 모습도 '임금에 의해 간택받는다'는 뜻이다. _ P. 87

☜ <궐어도> 고결과 권세의 상징 궐어(궁궐의 고기).








      조선 개국공신이자 풍수에도 밝았던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팔도를 사찰한 후 그 결과를 임금 앞에 아뢴다. 그 중 각 지역 사람들의 기질에 대한 이야기. 맞혀보세요.
(      )는 경중미인, 거울 속 아름다운 여인과 같이 겉은 화려하고 좋으나 실속은 그다지 없는 듯 합니다.
(      )는 청풍명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상하며 풍류를 즐깁니다.
(      )는 풍전세류,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같이 멋을 알고 붙임성이 있으며 유연합니다.
(       )는 태산준령, 큰 산과 험한 언덕과 같이 선이 굵고 웅장하며 험악한 기재를 갖고 있습니다.
(       )는 암하노불, 바위 아래 앉아 있는 늙은 부처님 형상으로 어질고 인자하며 유순합니다. _P. 113

 
   
     왕조가 망하자 산에서 더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았다는 허무맹랑한게 전설의 재미이면서도, 승자의 입장에서 패자를 철저히 응징하는 사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공식적 기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전설과 설화의 재미이다. 이 책에서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난을 일으키고 진압당한 이괄이 모함당했거나, 함정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라던가, 경이로운 장군이라고 추대하는 기록과 함께 제왕의 자질이 없는 미치광이로 묘사되어온 궁예에 대한 재해석은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나무이름, 지명유례 등을 통해 가능하다.
    
    이 밖에 마의태자는 정말 무기력하게 금강산에 숨어들어 마를 캐며 살았을까? 공양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세 곳 중 진짜 공양왕의 무덤은 어디일까? 그리고 단종이 모든 길흉화복의 신으로 모셔지게 되는 이야기 등이 소개되는데, 역사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이야기들이 참, 아름답다. 
    
   특히 달빛에 물든 삶을 산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아무래도 풍수과 토속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민초들에게서 이어져 온 이야기라서인지 묘자리를 잘써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전설들이 많았다. 특히 '백대 후손을 이어갈 땅'과 '3대에 걸쳐 정승이 날 땅' 중에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섰을 때 많은 이들이 권력의 이전투구에 신물을 느끼고 전자를 고른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큰 변고없이 잘 산다.
     
     대대손손 번창하는 것과 큰 권력을 얻는 것. 마치 소소한 행복을 얻을래, 남들이 우러르는 권력을 얻을래, 라고 물었을때 현명하게 전자를 택한 조상들의 지혜를 보는것 같았다. 사뭇, 묘자리 선택할때의 결심이 그 가문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면 풍수를 믿어봄직도 하단 생각이 든다. 



* (    )안에 들어갈 지명은
순서대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