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해뒀던 트윗 중에 " 같은 어법으로 사고하는 집단은 공동체이고, 다른 어법으로 사고하는 집단은 사회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오랜만에 한비야 책을 읽으면서 같은 어법으로 사고하는 공동체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굳이 걸어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열정이 없고, 항상 조증이 의심되는 에너지도 없으며, 무엇보다 주변사람들에게 무언의 힘을 불어넣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먼저, 그녀는 "난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내가 엄마아빠 딸인것도 내 동생 언니, 누나인것도, 내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인것도
내가 지나온 모든 우리 학교의 학생인것도, 내 이름이 김세은인것도 내 세례명이 스텔라인것도, 내 고향이 광주인것도 마음에 든다. 이것은 아마,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감사하는 어법 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몇 권의 책들을 상기시키는 어법을 사용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우울할 때 백지연 앵커 기사를 찾아 읽는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도 찾아보고 <백지연의 끝장토론>도 찾아본다. 별 뜻 없이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힘을 내는 뭇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았던 <MBC뉴스 백지연입니다> 와 중학교때 보았던 <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나는 나를 경영한다>, 그리고 이 책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던 때에 보았던 <자기설득파워>와 <나이스포스> <뜨거운 침묵>은 '진짜' 내가 덜 자랐을 때부터 '아직' 덜 자란 지금까지 일정부분 나의 성장을 같이 한 책들이다. 이 책들에서 그녀는 늘 "나의 하나님"을 이야기했다. 나는 약하고, 겁이 많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른사람보다 조금 더 부어주신 것들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고 그녀는 늘 말했었다. 나는 조금 이상했다. 이렇게 도도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그녀가 늘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며(?)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이렇게 멋진 그녀도 징징거리지 않던가.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린 후의 멋적음을 위안받을 수 있는 적절한 핑계였다. 덕분에 아직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정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비야 또한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세상 모든 일을 자기 좋은 식으로 해석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 그대로를 고백한다. 그래서 다 마련해주심을, 나를 사랑하셔서 좋은 것만 주심을, 나는 그 사랑에 응답해서 살아가야 함을 나도 용기내어 말할 수 있도록 등 떠밀어준다.
한비야가 " 내가 명색이 오지 여행가요, 구호팀장이지만 이런 현장은 난생처음이다. 소름끼치도록 끔찍하고 숨 막힐 정도로 절박한 곳 " 이라고 표현한 아프리카의 남부 수단 톤즈에 자청해서 들어간 사제가 있었다. 그는 의사였고, 사제였고, 선생님이었고, 밴드 지휘자였고, 아버지였다.
올해 초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이 들려주신 톤즈 이야기는 한비야가 이 책에서 간단히 언급한 실상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덤덤하다.
십대 소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는 아이가 에이즈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다. 환자에게 주어지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는 시집갈 때 반드시 소를 지참금으로 가져가야하는데 이 소 한마리 때문에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총을 들고 싸운다. 내전 기간동안 민간에 지급된 총은 평화협정 이후에 회수하려는 군인과 민간인들 사이의 싸움으로 또 번진다. 어른들은 가난해서 싸우고 아이들은 굶어서 죽는다. 이들은 왠만한 일에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존재가 슬픔이라 슬픔을 몰랐던 아이들에게 노래와 악기를 가르치던 남자는 사실은 눈물을 가르쳤다. 지참금이 없어서 늙은 할아버지에게 시집가는 열 아홉 소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는게 슬퍼 울었고,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자신이 미웠던 남자는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떠나며 울었다. 그들에게 응당 있었던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해준 의사, 사제, 선생님. 그 사랑에 사랑이라고 이름붙여주는 이 앞에서 그들은 울었다.
소말리아에서 행해지는 여성할례에 분개하고, 전통이라는 이름의 피해자라는 지각없이 자신의 잘못인 줄 아는 가엾은 다히로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울어주는 한비야의 모습은 이태석 신부님과 닮았다.
동행: 이희호 자서전
- 저자
- 이희호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다시 종교 이야기를 하자면 아니, 신앙 이야기를 하자면
한비야는 가톨릭 신자지만 개신교단체가 운영하는 월드비젼에서 근무하고 교회에서 예배도 보고 법구경을 좋아하며, 이슬람 친구와 " 우리의 종교는 정말 닮았구나!" 맞장구를 친다.
이희호 여사는 이화고녀, 이화여전을 나온 뼈 속 깊은 감리교 신자지만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과 결혼하여 일요일엔 남편은 성당에서 자신은 교회에서 주일을 거룩히 보냈단다. 남편의 수감중에는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기도했고, 그의 장례식은 가톨릭식으로 치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 좋은 것은 특히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기를 바라는 욕심은 참고 가려도, 감춰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당신들은 무엇을 믿나요? " "당신들의 신은 당신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나요?" 라고 물을 때 자신 있게 "서로 사랑하고 항상 감사하라고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들처럼, (한비야의 표현대로) 하이브리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너를 사랑하니까 미워하는거야 처럼 이율배반적인것도 없는데 말이다.
자신이 믿는 신앙을 한낫 자랑거리 악세사리로 여기며 "니꺼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는 친구를
왕따시키지 못해 안달난 중딩놀이를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걸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이 느끼는지 모르겠다.
+ 내 '어릴적' 멘토들이 이제 '꽉찬 이십대 후반의' 멘토가 되었다. 하늘 위에 살던 나의 멘토들이 나랑 같은 세상을 호흡하고 있음을 깨닫는게 어색했다. 그들을 여전히 천상에 놓고 우러르며 우와우와 감탄하고 살고 싶었었나보다. 그 멋진, 그 당당한, 그 아름다운 그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빈틈, 외로움, 나약함, 비겁함들을 보고나니 사실, 그들이 더욱 좋아졌다. 존경을 걷어내니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 그게 더 좋은거라는걸 아는 때가 되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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